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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구전사화

용문산 구전사화 16

by 자연사랑1 2018. 9. 29.


얼마를 나르자 매는 어느 산봉우리를 안고 돌기 시작했다.  세 바퀴를 돈 매는 산봉우리를 겨누어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잠을 깨어야 할 곰은 거기 없었다.  산 봉우리에 떨어진 방울은 남쪽 산마루를 타고 굴러 내려갔다.  매는 그냥 산봉우리를 안고 자꾸 돌기만 했다.  정작 곰이 잠들고 있는 웅이봉을 동북으로 마주 바라볼 수 있는 여기, 매가 돌고 있는 이 봉우리를 사람들은 “매돌봉” (세칭 맷돌봉)이라 하고 방울이 떨어져 굴러간 남쪽 산마루를 “매방울 양지”라 일러 온다.  

     청풍령 산마루에 이르러 장삼 자락으로 이마의 땀을 씻는 도사는, 분명 웅이봉이 아니라 웅이봉을 한발 앞둔 매돌봉에서 매가 돌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사의 눈에서는 다시금 애끓는 눈물이 주루루 흘러 내렸다.

     뒤 쫓는 신라군의 아우성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오는데 푸른 하늘 높이 매돌봉을 안고 매는 그저 돌고만 있었다
 
 

곰(天熊)과 금꾀꼬리

    도침을 쫓아 청풍령에 이르른 신라군은 선봉에서 도침을 쫓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산만한 추격을 중지한 후 군사를 정돈했다.

    지세를 보아 이제 도침이 더 도망할래야 할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이르렀음을 안 까닭이었다.

     동북쪽으로부터 남서쪽으로 흘러내린 소백산맥의 치렁치렁한 산줄기로부터 남쪽으로 툭 불거져 나온 이곳의 지세는, 곰이 잠들고 있는 웅이봉 너머에서 산줄기가 뚝 끊어져 있는 것이다.

     막다른 곳인줄 알면, 그저 순순히 목을 느리고 죽을 그런 녹녹한 도침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여기서 신라군은 만만치 않은 일전을 각오치 않을 수 없었다.  산만하게 흩으러져 도침을 잡으려다간, 도침의 그 출중한 무술을 감히 당해낼 수 없을 줄 알았던 것이다.

     대를 정돈한 신라군은 다시 질풍같이 말을 몰아 밀려 갔다.  

     도사가 매돌봉에 이르렀을 때는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고 걷잡을 수 없는 피로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이제는 기운도 맥도 다 풀어져 촌보를 더 움직일 것 같지 않았다.

     매돌봉을 안고 여전히 돌고 있는 매를 쳐다보고 도사의 얼굴에는 한 줄기의 비애가 멈추었다.

     - 제 자리에 떨어지지 못한 방울과 운명을 같이 하려는가?  지금껏 이 봉우리를 떠나지 않음은 ... -

     도사는 자기와 연결된 모든 일이 다 동일한 운명의 정점을 향하여 점점 조여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몸은 무겁고, 기운은 진했으나 불개미처럼 산을 뒤엎고 쫓아오는 신라군을 굽어보면서, 도사는 여기에 더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남풍을 타고, 천지를 뒤흔들어 버릴 듯한 신라군의 함성이 먼 계곡까지 메아리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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