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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구전사화

용문산 구전사화 13

by 자연사랑1 2018. 9. 29.


매돌봉(鷹廻峰)

 김유신은 생각했다.  황랑의 그 검술은 틀림없이 주류성이 아니면 계룡산의 도침의 가르침이 분명했다.  도침은 백제의 부흥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도침을 살려두는 한 황랑과 같은 백제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를 이대로 놔 둠은 신라의 큰 화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 이튿날 김유신은 상감께 아뢰어 즉각 중신회의를 열고 군사를 풀어 도침을 잡기로 결정했다.

 이 때 계룡산 속에서는 도침도사가 동굴에 앉아 여전히 명상에 잠겨 있었다.  도사의 등 뒤에는 큰 매 한 마리가 눈을 번득이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있으나 도사의 마음은 그렇게 평온한 것이 아니었다.  하늘의 도움이 없는 일이 어떻게 힘이 들고 성취되기 어려운 것인지 눈물 겹도록 느끼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모두가 허망한 것 뿐이었다.

 백제가 망한 뒤 왕족 복신(福信)과 더불어 주류성(周留城)에 근거를 두고, 백제의 재기를 꾀해 보기도 했으나, 복신은 원래 야심이 많고 횡포한데다가 도량이 좁은 인물이어서 도침의 인망이 큼을 시기하여 기회만 있으면 그를 없애려 했다.  복신과 이 큰 일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달아 도사가 홀연히 주류성에서 자취를 감추어 계룡산으로 아주 돌아오고만 것은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주류성 안에는 복신이 도침을 죽였다는 풍문이 떠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백제가 망하자 복신과의 연결은 이미 계룡산 속에서 황랑을 가르치면서 있었던 일로, 주류성까지 근 이백리 길을 하루 저녁에 오가면서 황랑도 알지 못하는 실로 분망한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도사가 이런 일들을 황랑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황랑이 산을 떠나기 거의 일년 전에, 그가 그렇게도 세상에 나가고자 애쓰던 때는 이미 백제가 망한 바로 뒤의 일이었으니 황랑을 내보낼 첫 기회를 잃었던 때이므로 당시 일편단심으로 수련을 쌓고 있는 황랑으로 하여금 나라의 망한 비보와 백제 부흥을 꾀하여 젊은이들이 주류성(지금 韓山)과 임존성(任存城 - 지금 大興) 등지에 모여들고 있다는 것을 알림으로 그의 마음에 동요가 있을까 꺼려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도사에게는 또 하나의 더 큰 이유가 있었으니 일방으로 백제의 부흥을 도모하는 한편 황랑으로 하여금 적장 김유신의 목을 노리게 했던 것이다.  도침은 싸움에 있어 군사 만명보다 지략있는 장군 하나가 더 귀함을 잘 알고 있었다.  신라의 오른 팔처럼 움직이는 김유신을 없애 버리면 신라의 손실이 큼은 물론 백제의 부흥운동 또한 그 만큼 쉬워지는 것이다.

 황랑이 나라의 망함을 슬퍼하던 그날 도사의 오른 뺨에 흘러 내리던 한 줄기 눈물의 뜻은 황랑과 다른 데 있었다.  황랑이 애통하고 있는 그 슬픔을 도사는 벌써 겪고 있었던 것이다.  도사의 눈물은 하늘이 백제를 돕고 있지 않다는데 있었던 것이다.  인정세사(人情世事)가 다 허망한 것 뿐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안됨을 절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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