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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구전사화

용문산 구전사화 17

by 자연사랑1 2018. 9. 29.


물먹은 솜뭉치처럼 주저앉을 것만 같은 몸을 이끌고 도사가 웅이봉에 다달았을 때에도 곰은 그저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립고 미덥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듯한 안도감과 함께 몸을 가눌 수 없도록 엄습해 오는 피곤 때문에, 곰의 품속에 몸을 내맡기자마자, 도사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징소리 북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고 산마루가 떠나갈 듯한 신라군의 함성이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진동했다. 

 천년을 깊이 잠들었던 곰이 이제야 퍼득 정신이 들었다. 

 하품을 하면서 긴 잠에서 깨어난 곰은 자기 품속에서 정신을 잃고 있는 도사와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는 신라군을 보고 자기가 공을 이루어야 할 때가 이 때임을 알았다. 

 곰은 몸을 한번 부르르 떨더니 하늘의 바람을 잡아 그 입으로 내뿜기 시작했다.  웅이봉 산마루엔 회오리 바람이 일어났다.  먼지와 나뭇잎이 날리고 잔 돌이 굴렀다. 

 소슬하던 남풍이 북풍으로 바뀌었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주먹같은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곰의 입김은 밀려오고 있는 신라군을 향하여 태풍처럼 불어갔다.  나무가 부러지고 신라군의 투구가 날아 떨어졌다. 

  신라군은 이것이 도침의 도술에 의한 것인 줄로 알았다.  이 변괴 앞에 신라군은 미상불 겁을 집어먹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경우 도침을 쫓아 간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신라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원래 가파른 산턱이란 기어 올라오기 보다는 내려가기가 더 위험스러운 것이었다.  게다가 이런 강풍이 등덜미를 휘몰아 침에 있어서랴.  여기 저기서 말이 굴러 떨어지고 군사가 비명을 올렸다. 

  신라군이 도망쳐 내려가는 것을 본 곰은 이번에는 그 입김으로 산등성에 박혀 있는 바위를 굴려 내렸다. 

  난데 없이 쏟아져 내려오는 바위돌로 말미암아, 신라군사는 당황하여 완전히 사분 오열이 되었다.  말이 돌에 치여 넘어지면 그 위에 탔던 군사는 땅에 떨어져 고개가 부러지거나 허리가 꺾이었다.  가파른 산턱, 험한 낭떨어지 그리고 좁은 계곡에 밀려 갈팡질팡했다.  이때였다.  눈동자를 찌르는 듯한 찬란한 광채에 부딪쳐서 신라군사들이 눈이 어두어진 것은… 

  설상가상이었다.  신라군사들은 이제 뒤로도 앞으로도 행동할 수가 없게 되었다. 좌왕우왕하먼 신라군은 마침내 굴러 내려오는 돌에 치여 죽고, 강풍에 날려 상하고 절벽에 곤두박질하여 지리멸렬이 되고 말았다.  말의 울부짖는 소리와 군사들의 비명으로 인하여 한동안 처절한 생지옥이 이루어졌다. 

  죽는 순간까지 백제 여인으로 지조를 지키다가 사무친 원한을 풀지 못한 채 억울하게 쓰러진 황랑의 어머니의 넋이 금꾀꼬리가 되어·아들의 은인인 도침도사를 구하기 위해 앞산 봉우리에 올라서 그 찬란한 빛을 온통 내뿜고, 피를 토하는 듯한 마지막 울음소리를 남기고 숨을 거둬버린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변괴가 생겼던 것이니, 이때까지 웅이붕에 엎드려 바람을 뿜고 있던 곰도, 매돌붕을 돌고 있던 매도 간 곳이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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