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랑의 오른 팔은 땅에 떨어져 펄떡이고 있는데 분노에 찬 김유신이 턱밑에 한 줄기 피를 흘리며 칼을 잡은 채 황랑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역이다!"
"역적이다!"
물 끓듯이 소리쳤다. 이 아우성 속에서 황랑은 하나 남은 왼손에 힘을 모아 원수를 향해 일격을 또 가했다. 그러나 황랑의 칼은
"푸르륵"
소리를 내며 허공에서 맴돌다 저만치 날아갔다.
"이 놈을 결박하라."
황랑은 묶인 몸이 됐다. 하늘도 무심하지 천추에 사무친 원한을 남긴채 황랑의 넋은 이것으로 종결을 지우는 것인가? 그 동안의 모든 시련과 정성이 물거품으로 끝나는가?
왕의 얼굴엔 그렇게 큰 분노라 할 것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
"네가 누구냐"
은근한 음성이었다.
"백제에서 온 황랑이다."
좌우는 다시 한번 놀랬다. 가까이서 보니 귀골로 생긴 데가 있었다. 무열왕은 고개를 끄떡였다. 기특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이는 지금 몇인고?"
왕은 역시 은근했다.
"뜻을 이루지 못한 오늘 너희에게서 아무 소리도 듣기를 원치 않는다. 원수의 나라에 와서 원수의 목을 자르지 못한 것만이 원통하다. 여러말 말고 어서 나를 죽여라!"
"이 놈, 입을 닫쳐라! 상감마마께 무엄한 말 버릇을.... 당장에 목베임이 좋을줄 아뢰오"
한 신하가 이같이 진언했다.
"백제에 충의를 가진 자 어찌 신라 임금을 받들까? 어서 죽기만을 원한다."
김유신의 얼굴 근육이 다시 한번 씰룩씰룩 경련을 일으켰다. 무열왕은 연민의 정을 품은채
"아깝다."
한 마디를 남기고 대궐을 향하여 행차를 분부했다. 즐거웠던 흥도 다 깨져 버렸다. 근래에 들어 와 건강이 좋지 못한 왕은 궂은 일을 보면 심기가 더 불편했다. 요즈음 신라에서는 왕의 건강이 올 한해를 넘기지 못할까 봐 조야가 다 근심 중에 있었다.
이튿날, 남산 해바라진 기슭에는 새로운 묘가 생겼다.
묘비에는 "백제충신황랑지묘"라 씌여 있었다. 백제에 얼을 바친 한 충혼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여기서 잠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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