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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구전사화

용문산 구전사화 6

by 자연사랑1 2018. 5. 17.

  

"요즈음, 세상은 살기가 어떠하오?" 가장 궁금했던 것이었다.

"아니, 젊으신네, 백제가 망한 것을 아직 모르오?"

"? 무엇이?"

황랑은 달려들어 억센 손으로 사나이의 멱살을 움켜 잡았다.

"정말인가?  사람을 놀리지 말고 바른대로 대라."

눈에서는 불똥이 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나이는 멱살을 잡힌채 태연히 대답했다.

"젊은이, 성급히 굴지 말고 내 말을 들으라.  장부 일언이 중천금이어늘 이해없는 허튼 소리가 무슨 필요 있을까?  내말을 믿지 않아도 좋으나 백제가 망한 것만은 믿어야 할 것일세."

어떤 체념에서 오는 자못 무게 있는 말이었다.  순간 황랑은 열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늘아, 하늘아, 무심하구나, 하늘아!"

하늘을 우러러보는 황랑의 얼굴엔 굵은 눈물이 뺨을 적셨다.

-일곱해 동안 피땀흘려 쌓아 온 결말이 이 말을 듣잠이었던가! - 

그 사나이에게서 들은 더 자세한 소식은 이러했다.  일년 전 그는 계백장군의 오천명 결사대중 한사람으로 황산벌 싸움에서 패하자 창에 찔려 쓰러졌던 목숨을 겨우 던져 몸을 피하여 산 속으로 헤매다가 바로 이 산 밑 동네에 정착한 후 나무를 긁으면서 산다는 것이었고 더우기 기막힐 사실은 사비성이 함락한 후, 왕과 함께 만이천명이 당나라로 사로잡혀 갔다는 것이다.

일년 전이면 바로 황랑이 세상으로 나가고자 애쓰던 해가 아니었던가?  이제 와서 원망스러운 건 스승 도침 뿐이었다. 

-그때 나를 왜 못 나가게 했던가! - 생각할수록 통분할 노릇이었다. 
-아버지의 원수, 나라의 원수를 갚을 길은 이제 영원히 사라졌단 말인가?  살아온 보람도, 살아야할 뜻도 다 무너졌다.  기회란 한번 잃으면 다시 얻기 힘든 것.  아-  원수를 갚을 기회가 다시는 내게 없을 것인가! -

회오리 바람처럼 소용돌이치는 마음의 아우성을 들으며 황랑은 한없이 울었다.  힘없이 동굴로 돌아 왔을 때 스승 도침은 명상에 잠긴 듯했다.  황랑은 스승 앞에 엎드려 조용히 울었다.

-스승은 이 망국의 비보를 알고 계시는가?  모르시는가?  저 오랜 명상은 나라가 망해 버린 오늘날 무엇을 얻잠인가?-

답답했다.  황랑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조국 백제는 벌써 일년 전에 망했다 하옵니다.  이 날이 오기 전 저 원수들의 목을 자르지 못한 것이 원통키만 하나이다.  이제는 다시 어느 때를 기다려야 하오리까?"

비분과 원망에 찬 흐느낌이었다.  그러나 돌처럼 그냥 굳어버린 듯 대답없는 도사이었다.  한 줄기 눈물이 도사의 얼굴에 고요히 흘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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