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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구전사화

용문산 구전사화 4

by 자연사랑1 2018. 3. 18.

황랑(黃郞)과 도침도사(道琛道士)

      청풍령 진의 보고는 곧 서울 사비성에 전해졌다.

      황헌 장군의 전사 통지를 듣고, 부인은 그렇게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남편을 전장에 내보낸 아내로서 항상 예기하고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와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왔을 뿐이었다.  부인은 아들을 불렀다.  이제 아홉살이라 하나 씩씩한 기상에 모습이 준수했다.

      "게 앉거라."

      황랑(黃郞)은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았다.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무엇이 터질 것만 같은데 꾹 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변경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다."

조용한 음성이었다.  남편의 죽음을 아들에게 알림에 이렇게 담담할 수가 있으랴!  황랑은 무슨 소린지 곧이 들리질 않았다.

      "조정에는 간신이 들끓고 변경에는 신라의 침노가 잦은 이때, 네 나이 비록 어리나 한가로이 지낼 수 없다.  어서 힘을 길러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어지러운 나라에 귀히 쓰여지는 그릇이 되어라."

어딘지 모르게 말 끝이 떨렸다.  어머니는 소리없이 일어나 농 속에서 한 자루의 칼을 꺼내 왔다.

      "이 칼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니라.  이때를 기다리던 칼이다.  장부로 태어나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못함은 가문의 수치다.  원수 김유신의 목을 베어 이 어미에게 보여라.  그 때까지 우리는 서로 만나지 않음이 좋다."

      황랑은 그 어떤 절박한 것을 느꼈다.  더 할 수 없는 슬픔이 가슴 속에 고여 올랐으나,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동으로 백리를 가 계룡산 속에서 도침(道琛)이라는 도승을 찾아라. 모든 것을 지시할 것이다. 아무 때든지 뜻을 이루기 전에 어미를 만나고자 생각하지 마라.  이제 마음을 결하고 곧 집을 떠나라"

비장한 분부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버지를 잃고 또 어머니마저 헤어지게 되었으니···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은 앞뒤를 재어 볼 여유를 두지 않았다. 

      "어머니, 염려하지 마십시요.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나라를 위하여 쇄신보은(碎身報恩)하겠습니다." 

      무인의 후예다운 결행이었다.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동쪽을 향하여 황랑은 떠났다.  어머님의 격려를 받으면서 황랑은 떠난 것이다. 
황랑의 모습이 산모퉁이로 사라지려 할 즈음 아들을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은 사뭇 녹는 것 같았다. 

      "언제 다시 오리-"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며 마지막 고향을 하직하려고 황랑은 뒤를 돌아 보았다.  그 때였다.  

      "어머니가······!" 

치마폭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울고 계신 저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  

      황랑은 어머니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정신없이 달려가던 황랑의 눈 앞에는 뜻하지 않은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황랑은 머리털을 쥐어 뜯으며 통곡했다.  조금 전까지 어머니가 서 계시던 집은 온통 불덩어리가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어머니는 뒷산으로 숨이 차게 치달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가 망할 무렵이면 반드시 조정에 간신이 세도하고 충신은 물러서게 마련이다.  나라에 충의가 있고, 세상 정국을 살피는 자 누가 아니 국운을 근심치 않았으랴! 

      무모하게 신라 변경을 침범함으로 국고를 소비하고 국사를 돌보지 않는 상왕을 위하여 눈물흘려 왕에게 간하는 신하가 있었으니 이는 좌평 성충(成忠)이었다.  그러나 왕의 귀에는 모두가 다 성가신 소리들이었다.  들릴 리가 없었다.  충의가 상주되지 못할 때는 역효과를 내는 것이 상례이다.  게다가 간신의 무고가 뒷받침이 되어 성충의 충절은 

      "사비성이 위태할 때는 탄현과 지벌포(-지금 금강하류)를 굳게 지키라." 

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끝을 맺었다.  의자왕 16년의 일이었다.  조야가 다 함께 비분과 강개 속에 묻혀 4년이란 헝클어진 세월이 흘러갔다. 

      의자왕 20년, 신록이 짙어가는 여름, 간신과 요부의 무리들로 하여 궁궐 안에서는 의자왕의 해괴한 계집 놀음이 점점 더 질탕해질 때였다.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의 13만 대군이 물길로 지벌포를 타고 들어온다는 것과 신라 김유신이 5만의 군사를 이끌어 변경을 뚫고 벌써 탄현을 넘어 쳐들어 온다는 급보가 왕에게 상주됐다.  왕은 즉각 장군 계백(階伯)을 불러 이의 방어를 명했다.  계백은 결사 정병 오천을 택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나라가 망한 뒤 천한 목숨이 살아 있어 오랑캐와 원수들에게 치욕을 겪을 것을 생각하여 칼을 빼어 아내와 자식들의 목을 잘라 버렸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사비성 중에 퍼졌다.  이에 오천의 결사대는 분연히 일어나 황산벌에 진을 쳐 신라군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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