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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구전사화

용문산 구전사화 2

by 자연사랑1 2017. 11. 29.

추풍령(秋風嶺)과 황헌(黃憲)장군  
 

 때는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 14년, 백제 변경을 지키는 황헌이라는 무명 장군이 있었다.  문무가 겸전하여 덕망이 높았던 이 장군은, 유학으로 당시 이름이 높아 왜국에까지 이를 전해 준 왕인선생을 사부로 모셔 대대손손이 그 가르침을 계승해 내려오고 있는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서쪽으로 삼백리, 백제의 서울 사비성(지금의 부여)을 곱을 수 있고, 동으로 삼백리, 신라의 서울 금성(지금의 경주)이 곱히는 여기, 백제의 변경 청풍령(淸風嶺)에는 소슬한 가을 바람 속에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교교한 달빛 아래, 백제와 신라를 갈라놓은 변경선은 줄기줄기 소백산백의 웅봉들을 구비쳐 잠들고 있었다. 

 장군 황헌의 얼굴에는 깊은 우수가 있었다.  국운을 근심함이었다.  등극 초기에는 안팎으로 국사를 살피심이 영특하여 명군으로서 백성의 신망이 높았던 상왕(의자왕)께서는 근자에 들어 사치와 연락에 빠져 가고 조정은 간신배들이 득세하여 민심이 들끓고 있다는 상서롭지 못한 풍문이 이곳 변경에까지 들려오고 있는 요즈음이었다.  충직한 성충과 흥수와 계백이 있어 한가닥 마음 놓이는 데가 있기는 하나, 시조 온조대왕으로부터 상왕까지 31대를 내려온 670여년의 백제의 사직이 기우러져 가는 것만 같았다. 

 그런가하면 동쪽 원수의 나라 신라는 점점 그 국력이 팽창해 가고 있지 않은가?  틈만 있으면 북으로 진출하려 했고 벌써 백년 전에 진흥왕은 조직적으로 무예를 연마하는 청소년 화랑을 길러 양병해 오다가 마침내 백제 변경을 침노함으로써 120년 간을 지켜오던 상호 공수동맹을 깨쳐 버리고 말았다.  그후 28대 진덕여왕 때 서해 바다 건너 당나라와 동맹을 맺었고, 뒤이어 김춘추가 무열왕이 된 것이 바로 올해 -의자왕 14년- 있어진 일이었다. 

 신라와 친한 당나라 태종은 몸소 18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쳐들어 왔으나 실패하고, 그후에도 거듭 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죽은 것이 5년 전의 일이었다.  그리하여 신라와 당나라는 백제 의자왕이 주색에 빠져 있고 조정과 민심이 이산된 이때를 노려 고구려로 향했던 화살을 백제로 돌려 댈 기세가 농후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요즈음, 신라군은 틈만 있으면 백제의 변경을 침범했다.  이 곳 청풍령 황헌 장군의 진에는 얼마전부터 새로운 적정이 나타나고 있었다.  어제 벌써 세번째의 신라 정탐군을 잡아 참해 버린 일만을 생각하더라도 요사이 변경에 나타나는 신라군의 태도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음을 넉넉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척병을 자꾸 침투시켜 백제군의 군세를 정탐케 한다는 것은 멀지 않아 큰 공세가 있을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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