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용문산 구전사화

용문산 구전사화 20

by 자연사랑1 2018. 9. 29.



발우봉(鉢盂峰)과 도침랑(道琛琅)

 사사봉으로부터 몇 개의 산등성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 도사는 몇 번이나 현깃증을 느꼈다.  다시금 어느 조그만 봉우리에 닿았을 때는, 앞으로 더 나아갈 길도 막혔거니와 그 보다도 이제는 몸을 더 움직일 기력이 전혀 없었다.

 끝없는 광야에 홀로 내동댕이쳐 진 고아처럼 인간의 능력 한계에서 영영 절연돼 버린 듯한 공허가 여울물처럼 덮쳐 왔다.  공허! 공허! 공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느 때라고 이 염불을 잊어본 일이 있을까마는 이때처럼 간절하게 염해 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 졌고 공허해 진 이 사바세계를 어서 떠나고만 싶었다.  아미타불에 돌아가 쉬고만 싶었다.

 - 이 장삼과 발우(鉢盂 - 중의 밥그릇 ? 속칭 바리때)를 누구에게 물려 주나 -
장삼과 발우를 물려 줄 제자가 없이 (중은 자기가 죽을 때 옷과 밥그릇을 제자에게 물려 주는 것이 관례이다) 이 세상을 떠나야하는 기구한 운명 앞에서 도사는 지난 날 자기와 인연을 맺었던 모든 사람들의 영상이 덧없는 무상 속에 흩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왔다가는 돌아가고 왔다가는 또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었다.  연하지 않는 것이 없고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수없이 부르면서 도사는 세상이 점점 멀어져 감을 꿈길처럼 의식했다.
주루루 두 줄기의 눈물이 도사의 뺨을 적셨다.  짙은 황혼이 조숫물처럼 밀려 오는데 도사의 손에 들렸던 발우가 힘없이 땅에 떨어져 굴렀다.

 오늘날 용문산의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도치랑이라는 마을의 동북편에 바라봉이란 조그만 봉우리가 있으니 이것이 곧 도사의 발우가 떨어진 발우봉(鉢盂峰)의 속칭이다.

 그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이 발우봉 아래 한 마을이 생겼고 도침이 묻힌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도침랑(道琛琅)이라 했으니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도치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됐다.  이는 세월을 따라 인심이 변해 가는 이치와 다를 것이 없다.
 
 

남은 이야기


부활천(復活泉)

 이때까지의 이야기 줄거리와 시대를 달리한 남은 이야기가 있다.  조선조 선조대왕(宣祖大王)때 아직 임진왜란이 일기 전의 일이었다.

 묘향산에 서산대사(西山大師)와 금강산에는 송운대사(松雲大師 - 四溟堂)라 하는 이름높은 두 중이 있었다.  어느 해, 이 두 명승은 남방 산수서활의 길을 떠났다.  경상도 옥산(玉山)땅에 이르러 서산(西山)을 답사하고 다시금 산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용문산 구전사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문산 구전사화 22  (0) 2018.09.29
용문산 구전사화 21  (0) 2018.09.29
용문산 구전사화 19  (0) 2018.09.29
용문산 구전사화 18  (0) 2018.09.29
용문산 구전사화 17  (0) 2018.09.29